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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삼국시대에는 교통수단으로 말은 물론이고 여전히 마차와 배가 사용되었으며 이외에 우차, 수레도 활용되었다. 말은 신라의 기마형토기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종종 그 예가 찾아지며, 배의 형태는 주형토기뿐만 아니라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에서 발굴된 당시 실물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차, 우차, 수레 등의 실물 모습은 고구려의 쌍영총과 덕흥리 고분벽화에 보인다. 또한 가마도 이 때에 이용되었는데, 고구려 안악 3호분의 벽화에는 남녀가 각각 호화로운 가마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라의 기와에, 바퀴 달린 연이라 해서 좌우에 구슬로 꿰어 만든 발이 늘어져 있는 왕이 타던 가마와 비슷한 게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여러 종류의 가마가 이용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당..
오늘날과 같은 지형과 기후에서 우리 만족의 형성에 참여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은 북방으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이동해 왔을 것인데, 이들이 이동해 온 경로가 곧 문화의 유입로이며 교통로였다고 할 수가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사냥 등으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였으나, 화살촉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흑요석과 같은 것은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되므로 그것을 물물교환을 통해 구하였다. 당시에 이미 씨족 사이의 왕래와 물건의 교역을 위한 교통로가 생겨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교통수단이 별달리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사람이 직접 걸어다니며 교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청동기 문화가 수용되면서 본격적으로 배와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바위에 새겨졌을 암각화에 배를 타고 고래잡이를 ..
개화기에 들어서면서 외국상인들이 국내에 들어와 상업활동을 하자 종래의 객주, 여각, 보부상 등이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객주, 여각 등은 상사회사를 조직하고, 보부상은 보부상단을 조직하여 외국상인과 대항하면서 자신들의 활로를 개척하였다. 그들 가운데 객주들은 서구적인 상거래 방법에 적응하면서 근대적인 상인으로 성장하여 갔다. 그들은 근대적인 객주조합도 만들었는데, 뒤에 한성상업회의소로 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한국상인들의 성장도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커다란 장애를 받았다. 상업활동이 활발하기 위해서는 자금의 유통이 원할하여야 하였지만, 일본이 한국의 금융을 장악하고 지배하면서 한국상인들의 상업활동은 더욱 불리해졌다. 일본인의 지배로부터 해방되고서야 한국인에 의한 상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
초인종이 두 번 울리고 새앙쥐 걸음처럼 사뿐한 발소리가 들렸다. 오귀스타 할머니가 문에 달린 사슬을 벗기느라고 잠시 뜸을 들이고나서 문을 열었다. 자식 둘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뒤로 할머니는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아홉 평 남짓한 이 작은 집에서 칩거하고 있었다. 그런 삶이 행복할 리가 없을텐데도 할머니의 상냥한 성품은 예나 다름이 없었다. "이러는 게 우스광스럽다는 건 안다만 끌신을 신는게 좋겠다. 마룻바닥에 밀랍을 칠했거든." 조나탕은 할머니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할머니는 종종걸음으로 앞장서 걸으며, 그를 거실로 데리고 갔다. 거실의 많은 가구들에는 덮개를 씌워놓았다. 등받이가 있는 커다랗고 긴 의자의 가장자리에 앉으면서 조나탕은 그 플라스틱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하려고 했지만..
"아시게 되겠지만 그건 당신이 기대하는 것이 전혀 아닐게요." 공증인은 그 가옥이 역사적인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르네상스시대에 늙은 현인들이 거기에 살았으며 그 현인들의 이름은 이제 생각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계단을 내려가서 어둠침침한 복도로 들어갔다. 공증인은 어두운 복도에서 한참 더듬거리다가 누름단추 하나를 헛되이 눌러보고는 투덜거렸다. "이런 제기! 이거 고장났구만." 그들은 요란하게 벽을 더듬으면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공증인은 마침내 문을 찾아내어 열더니, 이번에는 전기 스위치를 제대로누르고나서, 자기 고객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음을 깨달았다. "어디 편찮으시오, 웰즈 씨?" "일종의 공포증이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벌써 한결 ..
상업이 크게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가 되어서였다. 고려시대 이래 화폐가 간헐적으로 주조되기도 하였지만, 유동이 잘 되지를 않았었다. 그런데 숙종 때부터 상평통보라는 동전을 주조하게 되면서도 마침내 전국적으로 유통되기에 이르렀다. It was not until the late Joseon Dynasty that commerce began to develop greatly. Money has been cast intermittently since the Goryeo Dynasty, but the flow has not been good. However, since King Sukjong's reign, coins called Sangpyeong Tongbo have been cast, but t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