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의 모습들 - 농업 : 농사에 필요한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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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자매

앞에서 말한 것으로 대개 짐작을 하였을 것이지만 농사에 중요한 것은 봄에 논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그 곡식이 자랄 수 있도록 물을 공급하고 그리고 가을에 곡식을 거둬들이는 일이다. 

 

논밭을 갈자니 쟁기가 필요하고 물을 대자니 저수지가 필요하고 추수를 하자니 낫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가 가장 일찍부터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땅은 갈아서 일구어만 놓으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논바닥을 고르게 만드는 써레라든가 흙을 부수어서 부드럽게 만드는 미리깨 같은 것이 보조 농구로 쓰여졌다.

 

또 논밭에서 베어 온 곡식의 낟알을 뜯어내기 위해 도리깨나 그네 등이 필요했고 낟알의 껍질을 벗기기 위하여 절구나 연자매 혹은 물레방아가 필요하였다. 연자매는 소나 말의 힘으로 곡식을 찧는 것이고 물레방아는 높은 데서 떨어지는 물의 힘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밖에 또 필요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곡식의 성장을 방해하는 잡초들을 뽑아주는 일이었다. 잡초들은 곡식이 지리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빼앗아 먹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손으로 뽑아주거나 하였을 것이지만 뒤에는 이를 위하여 호미를 사용하게 되었다. 

 

호미는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면 각지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일은 땅을 기름지게 하는 것이었다. 같은 땅에 같은 해 여러번 계속해서 곡식을 심으면 땅의 양분을 모두 빨아먹게 되므로 곡식은 자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땅을 쉬어야만 했다. 이 애로를 극복하는 길은 물론 비료를 주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비료를 주기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세종대왕 때 만든 농사직설이라는 책에는 인분, 우마분, 녹비 등을 쓰는 것이 좋다고 적혀 있다. 

 

인분을 담아 나르는 데는 모양이 북과 같이 생긴 장군이라고 부르는 통을 이용하였다. 하여튼 이 비료의 사용은 해마다 농사를 쉬지 않고 지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농업의 발달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 왔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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