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의 모습들 - 상업 : 교역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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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왕

신석기시대에는 사람들이 씨족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진 공동체의 생활을 하였다. 그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기본적으로 스스로 마련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필요로 하면서도 만들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다. 

During the Neolithic period, people lived in a community made up of clan units. They basically prepared themselves what they needed to live. However, there were things they needed but couldn't make.

 

그런 경우에는 다른 공동체로부터 그것을 들여오고 대신 다른 물품을 주었다. 가령 육지 안에서 소금을 구할 수 없는 경우라든가 석기를 만들 석재가 구하여지지 않는다든가 하면 다른 물품을 주고 그것을 교역하여 왔다. 

In that case, it was brought in from another community and gave another article instead. For example, if salt is not available on land or stone tools are not available, other goods have been given and traded.

 

말하자면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철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철이 교환의 수환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더 많은 경우에는 포나 곡식이 그러한 역할을 하였다.

In other words, it means that barter was made. Then, as iron was used, iron became the return of the exchange. However, in more cases, po or grain played such a role.

 

그 뒤 삼국시대에서나 통일신라시대에도 그러했는데 철 대신 금이나 은이 귀족들 사이에 간혹 교환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일찍이 신라의 소지왕 때 서울에 시장을 열어 사방의 물품을 유통케 한 조치가 있었는데 관청에서 주도하여 서울 중심의 상업이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를 통하여 발달하였을 것으로 보여진다.

After that, the same was true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and the Unified Silla Period, where gold or silver instead of iron sometimes became a means of exchange among aristocrats. Earlier, during the reign of King Soji of Silla, there was a measure to open a market in Seoul and distribute goods on all sides, and it is believed that commerce centered on Seoul developed through the Three Kingdoms Period or the Unified Silla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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