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게 되겠지만 그건 당신이 기대하는 것이 전혀 아닐게요."
공증인은 그 가옥이 역사적인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르네상스시대에 늙은 현인들이 거기에 살았으며 그 현인들의 이름은 이제 생각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계단을 내려가서 어둠침침한 복도로 들어갔다. 공증인은 어두운 복도에서 한참 더듬거리다가 누름단추 하나를 헛되이 눌러보고는 투덜거렸다.
"이런 제기! 이거 고장났구만."
그들은 요란하게 벽을 더듬으면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공증인은 마침내 문을 찾아내어 열더니, 이번에는 전기 스위치를 제대로누르고나서, 자기 고객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음을 깨달았다.
"어디 편찮으시오, 웰즈 씨?"
"일종의 공포증이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벌써 한결 나아졌어요."
그들은 집을 둘러보았다. 66평쯤 되는 지하층이었다. 밖으로 트인곳이라고는 천장에 닿을락말락하게 나 있는 몇 안 되는 좁은 채광창이 고작이었지만, 조나탕은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벽들은 모두 똑같은 회색으로 도배를 해놓았고 어디에나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렇다고 조나탕이 이러쿵저러쿵 까탈을 부릴 형편은 아니었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이것의 5분의 1쯤 될 터였다. 게다가 이제는 그 집의 집세를 낼 방도조차 막막하였다. 그가 일하던 자물쇠 용역회사에서 최근에 그를 해고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에드몽 삼촌의 이 유산은 정말이지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거나 다름없었다. 이틀 후, 조나탕은 아내 뤼시와 아들 니콜라와 우아르자자트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푸들 종의 불깐 개를 데리고 시바리트가 3번지에 자리를 잡았다.
"이 회색 벽돌 말이예요, 이거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데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치장할 수가 있잖아요. 여기에 있는 거 다 손을 보아야 되겠어요. 감옥을 호텔로 바꾸는 일이나 진배없어요."
숱이 많은 살구빛 머리채를 들어올리면서 뤼시가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내 방은 어디 있어요?"
니콜라가 물었다.
"저 안쪽 오른편에 있는 방이란다."
"왕왕."
개도 질세라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러고는 뤼시의 장딴지를 잘근거리기 시작했다. 뤼시의 팔에 안겨 있는 것이 예전에 혼수로 장만해 온 그릇들이라는 사실을 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탓에 개는 느닷없이 화장실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개의 주인은 화장실 문을 닫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아예 문을 잠가버렸다. 개가 문의 손잡이까지 뛰어올라 손잡이를 돌릴 수 있을 만큼 영악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삼촌이 시원스럽게 인심을 쓰셨군요. 그분 잘 알아요?"
뤼시가 말을 이었다.
"에드몽 삼촌? 사실은 말이야.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아주 어렸을 때 그 양반이 나를 거꾸로 들고 비행기태우기를 곧잘 하셨다는 것뿐이야. 한번은 그게 너무나 무서웠던 나머지 위에서 그 양반한테 오줌을 싸버렸지."
그 말 끝에 그들은 웃음을 나누었다.
"겁많은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군요. 안 그래요?"
조나탕은 짐짓 못 들은 체하고 말을 이었다.
"그분은 나를 탓하지는 않고 우리 어머니에게 대뜸. '이런, 이 녀석 싹수를 보아하니 비행사 만들기는 글렀군....' 하시는 거야. 어머니 말로는, 그 후로도 그분은 줄곧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여오셨다는데, 정작 나는 그 후로 다시는 그분을뵌 적이 없어."
"뭐 하는 분이었어요?"
"학자였지. 생물학자였다든가."
조나탕은 생각에 잠겼다. 결국 그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있는 셈이었다.
거기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벨로캉이 자리를 잡고 있다. 높이 1미터, 지하에 50층, 지상에 50층이 있어, 그 일대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거주자들의 수는 1,800만으로 추산된다. 연간 생산량은 다음과 같다: 진딧물 분비꿀 50리터, 연지벌레 분비꿀 10리터, 느타리버섯 4킬로그램, 방출되는 돌 조각 1톤, 실용 통로 120킬로미터, 지표 면적 2평방미터.
한 줄기 빛이 비쳐들었다. 다리 하나가 막 움직였다. 석 달 전, 겨울 잠에 들어간 이후 가장 먼저 보인 몸짓이다. 다른 다리 하나가 천천히 뻗어 나온다. 다리 끝에 달린 두 개의 발톱이 시나브로 틈새를 벌린다. 세 번째 다리가 펴진다. 다음에 가슴이 펴지더니 하나의 생명이 몸을 추스른다. 그렇게 열 두 마리가 잠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무색 무명한 피가 동맥망 속을 원활히 순환하게 하려고 바르를 몸을 떨었다. 동맥 속은 반죽 같은 상태에서 리쾨르 같은 상태가 되더니 다시 물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심장이 조금씩조금씩 발딱거리기 시작한다. 심장의 따뜻한 기운이 되돌아온다. 고도로 복잡한 관절들이 회전을 한다. 보호판에 싸인 둥근 돌기 모양의 다리 관절들은 재 깜냥대로 한껏 회전 운동을 해본다.
개미들이 일어난다. 그들의 몸이 다시 숨을 쉰다. 그들의 동작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낱낱으로 나뉘어 있다. 느릿느릿 추는 춤사위 같다. 살며시 몸을 흔들고 바르르 몸을 떤다. 마치 기도를 하려는 것처럼 앞다리를 입 앞으로 모은다. 그러나 기도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발톱을 적셔서 그것으로 더듬이를 닦으려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열두 마리의 개미들이 서로서로 몸을 비벼 준다. 그러고는 옆의 동료들을 깨워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제 몸을 추스를 힘만 겨우 남아 있을 뿐, 동료들에게 나누어 줄 에너지는 없다. 그들은 아직 어렵다는 것을 알고 깨우기를 포기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조상처럼 몸이 굳어버린 동료들의 한가운데를 힘겹게 빠져나와 거대한 '바깥 세상'으로 향한다. 아직 싸늘한 피가 도는 그들 몸의 기관은 태양으로부터 열을 흡수해야만 한다.
기진 맥진한 개미들이 앞으로 나아간다. 한걸음한걸음이 힘겹기만하다. 도로 누워서 수백만의 자기 동료들처럼 평안을 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그러나 그건 안 될 말이다. 그들은 가장 먼저 깨어난 개미들이다. 이제 온 도시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어야 할 의무가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개미들이 도시의 거죽을 통과한다. 햇빛이 눈부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순수한 에너지가 몸에 와닿자 그들은 기력을 되찾는다.
'햇살이 우리의 텅 빈 몸 안으로 들어와 고통에 겨운 우리의 근육을 움직이고 갈라진 우리의 생각을 맺어주도다.'
이 노래는 불개미 왕국 오천 년째에 만들어진 오래된 여명악이다. 그 시대에 벌써 불개미들은 따사로운 햇살과 접촉하는 순간에 머릿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밖으로 나오자 개미들은 절도있게 몸단장을 하기 시작한다. 하얀침을 분비해서 그것을 턱과 다리에 바른다. 그러고는 솔질을 하듯 몸을 닦는다. 이 모두가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이어내려온 의식이다. 먼저 눈을 닦는다. 하나하나의 낱눈을 이루는 1,300개의 둥근창들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촉촉하게 적셨다가 습기를 말린다.
더듬이와 앞다리,가운뎃다리, 뒷다리도 똑같은 방식으로 깨끗하게 매만진다. 끝으로 붉은 갈색을 띤 아름다운 등판을 불똥처럼 반짝이도록 윤을 낸다.
먼저 깨어난 열두 마리의 개미들 중에는 생식 능력을 가진 한 마리의 수개미도 들어 있다. 그는 벨로캉의 보통 개미들보다 조금 더 작다. 위턱도 다른 개미들보다 좁다. 그리고 앞으로 몇 개월만 있으면 죽어야 하는 것이 그의 숙명이다. 그러나 수개미는 역시 다른 개미들이 알지 못하는 유리한 신체 구조를 타고난다.
수개미 계급의 첫번째 특권은, 생식 능력을 가진 중요한 개미답게 눈이 다섯 개라는 점이다. 작은 공 모양으로 생긴 두 개의 커다란 겹눈으로는 180도까지 넓게 볼 수 있다. 또 이마에는 세 개의 홑눈이 삼각형의 꼭지점 자리에 놓여 있다. 이 여분의 눈은 적외선 감지기나 다름없는 것으로서, 어디에선가 열이 발생하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아무리 캄캄한 어둠 속에서라도 먼 거리에서 그것을 탐지해 낼 수가 있다.
십만 번째의 천 년을 맞이한 대규모 개미 도시의 거주자들 대부분이 지하 생활 탓에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때, 수개미의 그러한 특성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수개미에게 그러한 특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개미는(암컷들이그러하듯) 날개가 있어서 교미를 하는 데 필요한 하루 동안의 비행을 할 수가 있다. 그의 가슴은, 가운뎃가슴 등판이라고 불리는 방패모양의 특수한 판으로 감싸여 있다. 또 수개미의 더듬이는 다른 개미들의 더듬이에 비해 더 길고 더 예민하다.
생식 개미인 그 젊은 수개미는 햇살을 실컷 즐기면서 도시의 둥근덮개 위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그러고는 충분히 몸이 덥혀지자 다시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일시적으로 전열개미 계급의 일원이 되어 태양에너지를 옮기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하 3층의 통로를 돌아다닌다. 거기에 있는 개미들은 아직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얼어붙은 몸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더듬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개미들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젊은 수컷은 자기 몸의 윤기로 잠을 깨우려고 일개미 한 마리를 향해 다리를 내민다. 다사로운 기운이 일개미의 몸에 닿자 기분 좋은 방전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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