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의 모습들 - 교통 : 통일 신라와 발해의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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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가 통일을 이루고서는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였으며, 그 밑에는 군, 현 등의 조직을 두어 전국에 대한 통치를 정비하였다. 왕경인 금성은 마치 바둑판과 같이 도로를 구획 정리하였으며, 소경은 왕경이 동쪽에 치우쳐져 있음을 보완하기 위하여 설치하였을 것인데, 신문왕 때에는 이러한 지리적 취약성을 극복하고 왕권의 강화를 꾀하기 위해서 수도를 달구벌로 옮기려고까지 한 적이 있었다.
  

한편 발해의 수도의 상경은 당의 장안성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외성을 두른 중앙의 북편에 내성을 쌓고 그 안에 궁전을 두었으며, 내성의 남문에서 외성의 남문까지를 연결하는 주작 대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반듯반듯하게 구획정리를 하였다. 그리고 이 상경을 중심으로 동경, 서경, 남경 및 중경의 5경을 설치하였을 뿐더러 이 밖에도 중요한 도시를 사방에 건설하여 15부라 일컬었고, 외국과 연결되는 5도라는 교통망이 정비되었다.
  

당시에 신라와 발해는 모두 당으로부터  문화적 선진국으로서의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기 원하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교역에 큰 비중을 두었다. 이 때의 교역은 대개 해로를 이용하여 중국산동반도의 등지를 거쳐서 행해졌는데, 여기에는 신라와 발해의 사신이 머무는 신라관과 발해관이 각각 두어졌다. 특히 신라는 이 신라관을 중심으로 신라방이라고 불리는 신라인의 거류지가 생기고 그들을 관할하기 위한 신라소라는 행정기관까지 설치되었다
  

신라 중에서도 청해진에 세력 근거지를 둔 장보고는 해상 무역 활동을 크게 벌여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 청해진 소속이었을 배의 실물이 바로1984년 완도 앞바다에서 발굴되어 이 무렵의 배가 어떤 구조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 장보고가 이끌고 청해진은 애초에 변경의 수비를 위하여 육지와 해안에 설치된 군진 중 대표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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