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의 모습들 - 교통 : 수레와 가마의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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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삼국시대에는 교통수단으로 말은 물론이고 여전히 마차와 배가 사용되었으며 이외에 우차, 수레도 활용되었다. 말은 신라의 기마형토기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종종 그 예가 찾아지며, 배의 형태는 주형토기뿐만 아니라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에서 발굴된 당시 실물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차, 우차, 수레 등의 실물 모습은 고구려의 쌍영총과 덕흥리 고분벽화에 보인다. 또한 가마도 이 때에 이용되었는데, 고구려 안악 3호분의 벽화에는 남녀가 각각 호화로운 가마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라의 기와에, 바퀴 달린 연이라 해서 좌우에 구슬로 꿰어 만든 발이 늘어져 있는 왕이 타던 가마와 비슷한 게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여러 종류의 가마가 이용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당시는 엄격한 귀족사회였으므로, 교통수단 역시 신분에 따라 사용 범위에 차별이 있었다. 예를 들면 신라의 경우 수레에 있어 그에 사용되는 나무의 종류, 깔방석의 꾸미개, 말의 치장 정도 등이 진골, 6두품, 5두품, 4두품에게 각각 다르게 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국가에서 이같이 엄격하게 교통수단의 사용 범위를 규제하고 있었기에, 이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 신라에서는 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세분화되었다. 당시가 정복사업을 추진해 가던 때로 모든 체제가 군사 중심이었으므로 오늘날의 국방부와 같은 병부에서 관할하던 것을, 육지의 것은 승부에서, 해상의 것은 선부에서 각각 나누어 맡도록 한 것인데, 이는 격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오늘날의 교통부와 해운항만청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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