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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스스로 입을 틀어막는다 지난달 24일 대전의 카이스트 캠퍼스를 찾았습니다. 봄이 곧 오는 것을 기대했지만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휑한 캠퍼스에는 펼침막이 바람에 흔들리며 마치 근조 메시지를 담은 것처럼 "학위수여식 사건에 대한 카이스트의 공식 입장을 촉구한다."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2022년 가을에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이날은 2024년 봄학기 개강일이었습니다. 새벽에 기차를 타고 대전에 도착했고, 서대전역에서 만난 동기와 함께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펼침막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경호처는 생각이 있나요? 얼마 전에 국회의원을 쫓아냈다가 욕먹었는데, 같은 일을 다시 하는 건 아니겠죠?" "대통령이 질책을 했으면 다시 하지 않..
이재명 심판론으로 지지율 급부상한 조국혁신당 조국혁신당의 지지율 상승이 4월 10일 제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근 4개 여론조사 기관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28%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17%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점은 조국혁신당의 등장입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국혁신당은 14%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더불어민주연합과의 차이가 미비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호남 지역에서는 민주당과 거의 차이가 없는 22%의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다른 제 3지대 정당과는 다소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조국혁신당은 6%로 제 3지대 정당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
고려는 건국 후 성종 현종 때를 거치면서 교통망이 정비되어 전국을 남쪽은 5도로 북방의 국경지대는 동계, 북계의 양계로 나누고 중요 거점에 3경 5도호부 12목이라는 행정구역을 두어 각각 연결하였으며 그 밑에 군, 현, 진 등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행정조직을 활용하여 전국에 분포된 252개의 역을 개경을 중심으로 22개의 역도로 연결하여 출장 중인 관리들에게 말과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이외에도 육로에는 도로변에 숙박소인 관, 정자를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게 했을 정이 있었고 해안에는 포, 강가나 하천가에는 배를 타고 건너가도록 나루터(진, 도)가 있어 교통망을 연결시켜 주었다. 이같이 교통망이 갖추어져 있으면서 농업 기술이 향상되고 수공업이 발달하여 개경에는 경시, 지방의 교통요지에는 향시가 형성되..
신라가 통일을 이루고서는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였으며, 그 밑에는 군, 현 등의 조직을 두어 전국에 대한 통치를 정비하였다. 왕경인 금성은 마치 바둑판과 같이 도로를 구획 정리하였으며, 소경은 왕경이 동쪽에 치우쳐져 있음을 보완하기 위하여 설치하였을 것인데, 신문왕 때에는 이러한 지리적 취약성을 극복하고 왕권의 강화를 꾀하기 위해서 수도를 달구벌로 옮기려고까지 한 적이 있었다. 한편 발해의 수도의 상경은 당의 장안성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외성을 두른 중앙의 북편에 내성을 쌓고 그 안에 궁전을 두었으며, 내성의 남문에서 외성의 남문까지를 연결하는 주작 대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반듯반듯하게 구획정리를 하였다. 그리고 이 상경을 중심으로 동경, 서경, 남경 및 중경의 5경을 설치하였을 뿐더러 이 ..
이러한 삼국시대에는 교통수단으로 말은 물론이고 여전히 마차와 배가 사용되었으며 이외에 우차, 수레도 활용되었다. 말은 신라의 기마형토기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종종 그 예가 찾아지며, 배의 형태는 주형토기뿐만 아니라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에서 발굴된 당시 실물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차, 우차, 수레 등의 실물 모습은 고구려의 쌍영총과 덕흥리 고분벽화에 보인다. 또한 가마도 이 때에 이용되었는데, 고구려 안악 3호분의 벽화에는 남녀가 각각 호화로운 가마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라의 기와에, 바퀴 달린 연이라 해서 좌우에 구슬로 꿰어 만든 발이 늘어져 있는 왕이 타던 가마와 비슷한 게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여러 종류의 가마가 이용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당..
오늘날과 같은 지형과 기후에서 우리 만족의 형성에 참여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은 북방으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이동해 왔을 것인데, 이들이 이동해 온 경로가 곧 문화의 유입로이며 교통로였다고 할 수가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사냥 등으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였으나, 화살촉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흑요석과 같은 것은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되므로 그것을 물물교환을 통해 구하였다. 당시에 이미 씨족 사이의 왕래와 물건의 교역을 위한 교통로가 생겨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교통수단이 별달리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사람이 직접 걸어다니며 교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청동기 문화가 수용되면서 본격적으로 배와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바위에 새겨졌을 암각화에 배를 타고 고래잡이를 ..